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,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.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아인 랜드 (문단 편집) === 미국으로 === [[파일:external/upload.wikimedia.org/Ayn_Rand.jpg|width=250]] ''1925년 대학 졸업 후 아인 랜드'' 최고 명예상을 수상하며 대학을 졸업한 그녀는 관광안내원으로 일자리를 얻게 되었다. [[러시아]]에서 끔찍하리만큼 불행을 느끼며 안내원으로 살아가고 있던 중, 그녀는 [[미국]]에 있던 친척의 편지 한 통으로 그 막다른 골목같은 직업에서 빠져나와 자유를 향하게 되었다. 시카고에서 살고 있던 포트노이가의 잠시 다녀가라는 방문 초대로 그녀는 1926년 러시아를 떠났고 1970년 잠시 여동생을 만난 것 이외에, 그것이 조국 및 가족과의 영원한 이별이 되었던 것이다. 미국에서 알리사 지노비예브나 로젠바움은 아인 랜드라는 이름을 갖게 되었다. 그녀의 독특한 개성과 끈질긴 [[개인주의]]는 그 이름의 선택에서도 드러난다. 그녀의 이름은 [[독일어]]로 '하나'라는 'ein'과 같은 발음이 나며 영어로는 [[소나무]] 'pine'과 각운이 똑같다. 성으로 택한 랜드는 미국에서 첫번째 영화 시나리오를 쓰던 무렵 사용하던 레밍튼-랜드 타이프라이터에서 따온 것이었다. 비록 [[영어]]는 서툴렀지만, 랜드는 잠시 [[시카고]]에 머문 후에 [[할리우드]]로 떠났다. 이때 그녀의 지갑에는 50달러 밖에 없었다고 한다. 영화를 위한 글을 써서 생계를 해결해볼 작정이었다. [[할리우드]]에 온 지 이틀째 되던 날 그녀는 자신이 좋아하던 미국인 [[연출가]] 세실 B. 드밀을 사귀게 되었는데 그는 그녀를 '왕 중 왕'을 찍고 있는 촬영현장으로 데려갔고 이어 그녀를 엑스트라로 기용하기도 하고 그녀에게 주니어 시나리오 작가로서의 일거리를 주기도 하였다. 방문비자를 받고 미국에 잠시 다니러 왔다가 불안하게 눌러앉아 있던 그녀는 1929년 찰스 프랭크 오코너[* 그도 '왕 중 왕'에 엑스트라로 나왔었다.]와 결혼함으로써 비로소 미국에 머물 수 있는 합법적 신분을 갖게 되었다. 그녀는 자신의 남편 프랭크를 이렇게 회상했다. >프랭크는 내게 정신의 연료다. 그는 내 소설을 창조한 인생관에 현실성을 부여해주었으며, 주위에는 온통 경멸감과 혐오감만 불러일으키는 인간들과 사건뿐들뿐인 잿빛 사막에서 내가 오랫동안 그 인생관을 지킬 수 있도록 도와주었다. 결혼 직후 랜드는 RKO의 의상분과에 취직을 하게 되었다. 비록 그 일이 싫었지만, 영어를 더 배우는 동안 생계를 해결하는 데 도움을 준다는 생각에서 두말 않고 그 일에 매달렸다. 그녀의 언어발달은 놀라울 정도여서 그녀는 성인이 되어 새로운 언어를 배운 후 예술적 마스터 경지에 이른 몇 안되는 사람들 중의 하나[* 조세프 콘라드와 블라디미르 나보코프를 연상시킨다]로 꼽힌다.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-BY-NC-SA 2.0 KR으로 배포하고,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.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.캡챠저장미리보기